우리가 숨을 쉬며 살고 있는 지구는 3~4차원의 물질세계입니다. 물질세계에 속하는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변화를 계속합니다. 즉 그 상태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작동하고 있는 여러가지 물리적 힘들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하나의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과정을 도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동양의 전통적인 지혜가 바로 주역입니다.
내가 현재 처한 상황이 주역의 64괘상 중에서 어는 괘상에 속하는 것인가를 알면, 앞으로 진행해나갈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역은 우리 인간의 학문이 아니라, 신이 우리 인간들에게 우주의 작동원리를 알려주기 위하여 전해준 학문이라고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변화의 방향은 여러가지입니다. 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둘 이상의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변화의 방향을 때로는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끌려갈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보다 더 어려운 것은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괘상을 찾아내는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주역을 해석한 책들을 보면, "점"이라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점"을 보는 방법이나 절차, 활용도구 등은 다양합니다.
옛날에는 엽전을 사용하거나 바둑알을 사용하였으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동전이나 책 혹은 주사위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어떤 분이 지으신 책을 보니, 이순신 장군께서는 윷을 사용하셨다고 합니다.
공자님은 점을 되도록이면, 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 나름대로 그분의 뜻을 유추해보면, "진인사대천명" 모든 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일을 최선을 다하여 처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도저히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 때, 점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순신 장군께서도 적과의 전쟁을 위하여 모든 준비를 철저히 하신 후, 결과에 대하여 윷점을 치셨다고 합니다. 다가올 미래에 대하여 자신의 판단을 점검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약의 사태에 대하여 대비를 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현대인들이 미래가 불확실하니, 불안감에서 점을 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취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변화가 극심한 때에는 다가올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사실상 일반인으로써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주어진 운명이려니 하고 다가오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힘들면 힘든데로, 때로 좋으면 좋은데로 다가오는 결과에 순응하며 살아갑니다.
저도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중의 하나입니다. 때로는 주어진 운명이 너무 힘들어 그 운명을 바꾸어 보고자, 몸부림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몸부림의 결과, 주어진 운명에서 벗어나 삶의 질이 업그레이드 되는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봅니다. 그러한 힘이 나에게는 없다는 것이 때로는 서글퍼지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삶이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란 것을 느끼곤 합니다.
얼마전 인터넷을 보니, 사업실패로 1억정도 빚을 졌는데, 이 빚을 갚기 위하여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였던 분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빚은 이자와 더불어 불어나 3억정도가 되었고, 그 3억을 갚기 위하여 10년을 아르바이트를 하였으며, 하루 20시간 이상을 일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상황을 헤쳐나갈 길이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였고, 그 길을 찾아서 매진했던 그분의 힘에 대하여 놀랐습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쥐구멍에도 볓 들 날이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있고, 사주에서도 "궁즉통(窮卽通)"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고 느꼈지만, 그 순간에도 마음을 가다듬으면, 살아나갈 방도가 보인다는 이야기겠지요.
노스트라 다무스도 사람들의 운명을 볼 줄 아는 예지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노스트라다무스도 주어진 운명의 힘이 99%이지만, 1%의 힘이 운명을 뒤집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어렵다고 쉽게 모든 것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다만, 내가 살아나갈 방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선생님에게 주역을 배울 때, 선생님이 가지신 자료를 복사를 하기 위하여 잠시 자료를 빌려올 때,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주역에 관한 자료는 특히 소중히 다루워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자료를 복사집에 맡기러 갔을 때, 마침 복사집의 복사일이 많이 밀려 있어서 하는 수없이 복사를 의뢰하고 왔습니다. 약속한 시간쯤 복사물을 찾으러 갔습니다. 복사물을 원본과 대조하면서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 실수라고는 거의 하지 않은 분인데도, 그날 제 복사물을 똑같은 내용을 앞뒤 양면에다 복사해 놓은 것입니다. 복사집 사장님은 미안하다고 하면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다시 복사를 해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문득 선생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조그만 자료 하나에도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주역이라는 생각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주역에 관한 것이면 조그만 자료 하나라도 복사집에서 기다렸다가 복사를 해오고, 아니면 제가 직접 복사를 합니다. 위와 같은 경험을 그 뒤에도 몇 번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지구상에서 우주를 움직이는 물리적 힘들이 작용하는 상황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이들 힘들의 작용 속에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은 우리 몸의 상태를 결정하게 되고, 우리의 정신세계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주를 본다는 것은 내가 어떠한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고, 어떻게 성장하였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향을 파악하게 되면, 현재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내가 어떻게 움직일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나에게 득이 될지, 해가 될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득이 된다면, 좋지만, 해가 된다면, 나의 행동방향을 바꾸면 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습니다.
사주를 보면서, 돈이 많이 생기고, 좋은 직장이 생기고, 좋은 배필을 만나고, 하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성향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성향을 모르고 살아간다면, 사주에서 정해진 데로 움직이는 것이니, 운명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향을 알고서, 다가오는 문제들에 대하여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운명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창조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운명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넓은 시야를 갖고서, 자신의 미래를 상상해보세요. 자신이 좋아하는 미래가 분명하게 그려진다면, 이제 자신이 파악한 자신의 성향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어떠한 모습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지를 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자신이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미래를 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헌 옷은 지금 현실과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벗어버려야 합니다. 물론 새옷을 입기가 망설여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헌옷은 나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이고, 내가 좋아하였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습관을 뜻하는 영어 custom은 옷이란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습관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현실과 맞지 않을 때, 자신에게 가장 잘 맞다고 생각하는 옷을 벗어버릴 수 있는 용기를 내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선(上善)은 최고의 선, 즉 가장 훌륭한 진리는 바로 물(水)과 같다는 말입니다. 물은 주어진 환경이 어떠한 것이라도 받아들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웅덩이에 고여서 흘러갈 때를 기다립니다. 때에 따라서는 화급하게 움직입니다. 바위를 만나면 피해갑니다. 우리의 삶도 물처럼 움직인다면... ...
식물이나 동물과 사람이 다른 점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식물이나 동물은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 즉 본능을 최대한 활용하여 살아가는 반면에 사람은 생각을 합니다. 즉 주어진 환경을 분석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판단을 합니다. 즉 목표설정을 하지요. 때로는 설정한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럴때 사람들은 실패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동물도 먹이사냥에서 목표한 먹이를 놓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물은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사냥 목표를 찾으러 떠납니다.
우리는 실패라는 개념을 머리에 떠 올리는 순간, 수만가지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게다가 좋지 않은 감정들까지 수반합니다. 만약 실패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면, 동물처럼 새로이 목표를 정하고 다시 시작해야지요. 단 필요한 것은 우리가 사람이므로 실패한 이유를 분석하고, 목표를 수정하던지, 접근방법을 바꾸는 것입니다. 아직 성공하지 못했으니, 실패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이지요.
이와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른 생활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사주를 본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능력을 아는 것입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이 어떠한 것을 선택을 하느냐 하는 것은 자신이 결정합니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평가를 내릴 수가 없습니다. 평가는 자신이 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평가를 만족으로 선택하는 것도 바로 자신이 하는 것이란 것을 깨닫는다면, 그 순간부터 행복할 것입니다.
내가 기분이 좋으면, 운명의 수레바퀴도 내가 바라는 곳으로 굴러가지만, 내가 우울하면, 운명의 수레바퀴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고 하니, 내가 만족을 선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불행한 것이 좋다고 우긴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리고 어차피 주어진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만족을 선택하여서 짧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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